<늘푸른나무/선비들의 지혜를 찾아/2016년 8월>

사백구문(謝白鷗文)-흰갈매기에 감사하는 글

-정 이 오-

정이오(鄭以吾,1347-1434)는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시호는 문정(文定),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1374년(공민왕 23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색, 정몽주등과 교유하였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고금에 물건을 노래하는 시인믁객들이 모두 갈매기를 빌어 자신의 한적한 의취와 비일한 태도을 나타내나, 대가들에게서 그 예를 들어 말한다면 <老壯集>중에 그것을 볼 수 있다.

내가 물결을 쫓아 무선을 타고 바다위를 남행하는데 , 항상 배를 대고 군사들이 쉬는 때에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날아든다. 갈매기는 멱감지 않아도 희고 , 물들이 흐리지 않아, 그 정신과 자태가 무심하게 뜬 구름과 같아서 , 멀리서 바라볼 만하나, 잡아서 조롱에 가둘 수는 없다.

그러나 차츰 오랫동안 자세히 관찰해 보니 그들이 배에 가까이 오는 것은 오직 마시고 쪼을 것은 구하려 함이다. 왜냐하면 무릇 무선의 군사들이 고기도 잡고 사냥도 하므로 그 새나 짐승, 고기, 자라들의 비늘, 껍질, 내장 따위를 얻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내가 속으로 그들의 소행을 너절히 여기고 또 샌각하기를 , 무릇 새나 짐승들이 몸을 잃는 것이 내부분 먹이의 원인때문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무부(武夫)에게서 탄환을 빌어 쏘아 그 꼴을 보려고 하였더니, 내가 탄환을 얻은 뒤로는 웬일인지 갈매기들이 쉬 배에 가까이 오지 않는다. 아마 벌써 눈치를 챘음인가? <논어>에 가로되 “빛이 보이자. 한 뒤에 보인다”하였음이 갈메기를 말함인가?

내가 이것을 보고 비로소 시인 묵객들이 갈매기를 시로 멀리 읊어서 취하는 뜻이 무엇인지 알았다. 아아, 세상의 이익을 탐내고 부귀에 몰리는 자들이 형벌에 걸려도 모르니 사람으로서 새보다 못하단 말인가? 글을 적어 갈메기에게 사례한다.

새 중에도 갈매기는 구름보다 희어서
허허 바다에 잠길락 들락 길들이기 어렵구나.
눈치를 보이자 화살을 멀리 하나니
너의 삶이 기미를 아는 게 귀신같구나
네가 부끄러워 탄환을 버린다.
오가지 말아라. 내 마음 뒤숭숭하다.
세상 사람들 웃음 속에 칼이 있거니
흰 갈매기 버리고 매 누구와 함께 가리
파리떼들 천지에 가득한데
내 마음 속 누가 밝히랴?
강호에 둥실 떠 다니며 항상 너희들과 함께 변함 없이 노닐리라 (東文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