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2년 6월>

조신의 꿈

조신이라는 중이 꿈에 평소에 사모하던 태수의 딸과 혼인하여 자식을 낳고 어렵게 살다가 , 마침내는 헤어지게 되는 데서 꿈을 깨고 난 뒤, 인생이 일장춘몽임을 깨닫고 불도에 귀의한다는 이야기이다. 꿈을 소재로 한 설화의 효시로 후대의 몽유록계 소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편 꿈에 묻었던 자식의 무덤을 꿈에서 깨어나 파보니 돌미륵이 나왔다고 한 데서 불교적인 모습과 미륵신앙의 모습들이 이 설화에 혼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옛날 신라가 서울이었을 때 세규사의 장원이 명주 날이군에 있었는데 본사에서 중 조신을 보내서 장원을 맡아 관리하게 했다. 조신이 장원에 와서 태수 신혼공의 딸을 좋아하여 깊이 혹하여, 누차 낙산사 관음보살 앞에가서 인연을 맺어주기를 몰래 빌었다. 이로부터 몇 해 동안에 그 여자가 출가하였으므로, 또 불당 앞에 가서 대비 앞에 그 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원망하여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그리운 정에 지쳐 잠깐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갑자기 김씨 낭자가 문을 열고 들어와 반가히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일찍이 스님을 잠간 뵙고 알게 되어 마음에 사랑하여 잠시도 잊지 못하였으나 부모의 명에 못 이겨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로 시집 갔었습니다. 지금 내외가 되기를 원하여 왔습니다.”

이에 조신이 대단히 반기어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 40여년을 살고, 자녀 다섯을 두었다. 집은 네 벽뿐이요, 양식조차 대지 못하고, 마침내 꼴이 말이 아니어서 서로 이끌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얻어먹고 지냈다. 10년을 이와같이 사는 사이에 초야를 두루 유랑하여 옷이 해져 몸을 가리지 못하였다. 마침내 명주 혜현령을 지날 때 15세 된 큰 아이가 홀연히 굶주려 죽자 통곡하면서 길가에 묻었다. 남은 네 식구를 데리고 이들 내외는 우곡련에 이르러 길가에 모옥을 짓고 살았다. 이제 부부는 늙고 병들고 굶주려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10세 되는 계집아이가 밥을 빌어다 먹는데, 다니다가 마을 개에게 물렸다. 이픔을 부르짖으며 앞에 와 눕자, 부모가 탄식하여 울며 눈물을 흘리었다. 부인이 눈물을 씻고 갑자기 말하였다.

“내가 처음 낭군을 만났을 때는 얼굴이 아름답고, 나이가 젊었으며, 의복이 많고 깨끗하였습니다. 한 가지 맛있는 음식도 그대와 나누어 먹고, 옷 한가지도 그대와 나누어 입어, 출가 50년 동안에 정이 이를 데 없고 사랑도 얽히어 두터운 인연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쇠약해지는 병이 날로 더하고, 굶주림과 추위가 날로 더욱 닥쳐 오는데, 남의 집 곁방살이나 하찮은 음식조차도 빌어서 얻을 수가 없게 되었으며, 수많은 문전에 걸식하는 부끄러움은 산더미보다 더 무겁습니다. 아이들의 기한(飢寒)도 면케 할 수 없으니 어느 틈에 사랑이 있어 부부의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붉은 얼굴과 예쁜 웃음도 풀 위 이슬이요, 자초와 난초같은 약속도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가지입니다. 그대는 나 때문에 누가 되고 나는 그대 때문에 근심이 됩니다. 가만히 옛날 기쁘던 일을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로 근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대와 내가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뭇 새가 다 함께 굶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짝 잃은 난새가 거울을 향하여 짝을 부르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역경을 당하면 버리고 순경을 당하면 같이하는 것은 인정상 차마 못할 일입니다. 하지만 행하고 그치고 하는 것은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헤어지고 만나는 것도 운수가 있는 것입니다. 원컨데 이 말을 따라 헤어지기로 합시다.”

조신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각각 아이 둘씩을 나누어 데리고 가려 할 때 여자가 말하였다.

“나는 고향으로 가겠으니 그대는 남쪽으로 가십시오.”

이별하고 막 길을 떠나려고 할 때에 꿈을 깨었다. 타다 남은 등잔불은 깜박거리고 밤도 이제 새려 하고 있었다. 아침이 되니 수염과 두발이 모두 세고, 멍청하여 세상에 뜻이 없어졌다. 괴롭게 사는 것도 싫어지고 , 백년 신고에 싫증이 나서 마치 한평생의 고생을 다 겪고 난 것과 같아 재물을 탐하는 마음도 얼음 녹듯이 깨끗이 없어졌다. 이에 관음보살의 상(像)을 대하기가 부끄러워지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참을 길이 없었다. 돌아와서 해현에 묻은 아이를 파보니 곧 돌미룩이었다. 물로 닦아 부근 절에 봉안하고 서울로 돌아가 장원의 맡은 책임을 내놓고, 사재를 털어 정토사를 창건하고 부지런히 착한 일을 했다. 그후에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다.

평론해 말하면 ‘이 전을 읽고서 책을 덮고 과거를 생각하니 어찌 반드시 조신의 꿈만이 그러하리요. 지금 모든 사람이 속세의 즐거운 것만 알아 기뻐하고 애쓰고 있으나 이것은 단지 깨닫지 못한 때문이다.’ 이에 시를 지어 경계한다.

잠간 마음이 맞아 뜻이 한가롭더니
은연히 근심으로 해서 젊은 얼굴 늙었도다.
모름지기 황량(黃梁)이 다 익기를 기다리지 말고
인생이 한 꿈과 같음을 깨달을 것을.
몸 닦는 것 잘되고 못됨은 먼저 성의에 달렸거늘
홀아비는 미인을 꿈꾸고 도적은 장물(藏物)을 꿈꾸엇도다.
어찌 가을날 하룻밤 꿈만으로
때때로 눈을 감아 청량(淸凉)에 이를 수 있으랴.

*이 자료의 원문은 일연이 1281년에 편찬한 <삼국유사 권3>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