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2년 5월>

거 타 지

진성여왕 시절에 아찬 양패는 왕의 막내 아들이었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는데 백제 해적이 진도에서 길을 막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궁사 50인을 뽑아 따르게 했다. 배가 곡도에 이르렀을 때 풍랑이 크게 일어 열흘 동안이나 머물렀다. 공이 그 일을 근심스럽게 여겨 사람을 시켜 점을 쳐보게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설화의 현장-곡도는 지금의 백령도라고 한다.

"섬에 신령스러운 못이 있으므로 거기서 제사를 지내면 일이 잘 되겠습니다.”

그래서 못 위에 제물을 차려 놓았더니, 못의 물이 한 길 넘게 솟구쳐 올랐다. 그날 밤에 어떤 노인이 꿈에 나타나 말했다.

“활 잘 쏘는 사람을 이 섬에 남겨주면 순풍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공이 꿈에서 깨어 좌우 사람들에게 이일을 의논하면서 말했다.

“누구를 남겨 두는 것이 좋겠소?”

여러 사람이 말했다.

“나무 조각 쉰 개에다 우리들 이름을 써서, 어느 것이 물에 가라앉는가 보고 뽑읍시다.”

공이 그렇게 했다. 군사 중에 거타지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 사람 이름이 물에 가라앉았다. 그래서 그 사람만 남겨 두었다. 순풍이 문득 일어나 배가 거침없이 나아갔다. 거타지가 근심하면서 섬에 서 있는데, 갑자기 어떤 노인이 못에서 솟아오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서해(西海)의 해신(海神)입니다. 매일 한 사미(어린 중)가 해 뜰 무렵에 하늘에서 내려와 다라니(범어로된 불교주문)를 외면서 이 못을 세 번씩 돕니다. 그러면 우리 부부와 자손이 다 물 위에 떠오르고, 사미가 내 자손의 간장을 다 빼먹어 버립니다. 이제 우리 부부와 딸 하나만 남았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반드시 올 터이니, 그대가 활로 쏘기 바랍니다.”

거타지가 말했다.

“활 쏘는 일이라면 내 장기이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노인은 감사하고 사라졌다. 거타지가 숨어서 기다렸다. 이튿날 동쪽에서 해가 뜨니, 사미가 과연 왔다. 전과 같이 주문을 외면서 늙은 용의 간을 빼려했다. 그때 거타지가 활을 쏘아 명중시키니, 사미가 변해서 여우가 되어 땅에 떨어져 죽었다. 그러자 노인이 나타나 사례했다.

“공의 은공을 입어 내 생명을 온전하게 했으니, 청컨대 내딸로 아내를 삼아 주십시오.”

거타지가 말했다.

“주시는데 마다하겠습니까? 진실로 원하던 바입니다.”

노인은 딸을 한 가지의 꽃으로 변하게 해 거터지의 품속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용 두 마리에게 명해서 거타지를 받들고 사신의 배에 이르러, 그 배를 호위해 당나라 지경으로 들어가게 했다. 당나라 사람들은 신라의 배를 용 두 마리가 받들고 있는 것을 보고 사실대로 위에 아뢰었다. 황제는 말했다.

“신라의 사신은 비상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잔치를 배풀어 여러 신하 위에 앉히고, 금과 비단을 후하게 주었다. 고국에 돌아오자, 거타지는 꽃가지를 꺼내 여자로 변하게 해서 함께 살았다.

이 자료의 원본은 일연이 1281년에 편찬한 <삼국유사> 권2에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