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한국의 전설과 설화를 찾아/2010년 10월>

한국의 전설과 설화를 찾아서

급변하는 세상에서 옛 것들이 자취도 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어렸을 때 집 안 어른들을 통해서 들었던 전설이나, 민담들이 아련하게 사라져 가고 있다. 때로는 무서워 머리카락이 곤두 서는 듯 했고 때로는 몇 일씩 계속되는 시리즈에 잠을 설치기도 하면서 재미 있게 들었던 이야기들이지만 지금은 가물 가물 제대로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요즘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면 ‘웃긴다’고 하겠지만 TV도 라디오도 없던 시절 왜 그렇게 재미있었던지! 나름대로 교훈도 있었던 듯 한데. 그래서 <한국의 신화와 전설을 찾아서>를 계속하면서 민담과 전설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지네장터

충청북도 청주 지네장터에는 그 옛날, 지네를 위한 당집이 있었다고 한다.

옛날, 이 지네장터에서 몇십 리 밖 어느 마을에 장님 아버지 한 분을 모시고 살아가는 효녀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순이라고 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이 세상을 떠나가고 어린 순이는 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라면서 또한 아버지를 봉양하게 되었으니, 남의 잡 일을 보아주고 밥과 옷을 얻어다가 아버지를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그러나 순이는 나이가 먹어갈수록 자기 아버지를 남과 같이 편안하게 못해 드리는 것을 항상 안타까워하였다.

하루는 그가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 수채에 물을 부으려고 하자, 웬 두꺼비 한 마리가 나오므로 순이는 밥 찌끼와 고기 뼈다귀 같은 것을 주었더니, 그런 뒤로는 아침 저녁으로 꼭 그 두꺼비가 나오므로 순이와는 둘도 없는 동무가 되었고, 수년 후에는 그 두꺼비가 큰 강아지만큼이나 자랐다.

그런데 그 때 지네장터 마을에서는 큰 지네가 나타나 인명의 피해가 많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아무리 퇴치를 하여도 퇴치를 하면 할수록 인명의 피해는 더 심하여 갔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서로 의논하고서 그 지네를 위하여 당집을 짓고 해마다 처녀 한 사람씩을 제물로 바치기로 하였다. 그런데 제물로 바칠 처녀가 문제였다. 그리하여 또다시 의논한 결과 마을에서는 돈을 거두어서 여러 사람이 딴 마을로 가서 그 돈으로 처녀를 사오기로 하였다.

그때 마침 순이가 살던 동리에도 그 사람들이 와서 많은 돈을 주고 처녀를 사간다는 말이 들이었다. 순이는 이 소문을 듣고서는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고 생각한 나머지 자기 몸을 팔아서 그 돈으로 앞 못 보는 불쌍한 자기 아버지를 편안하게 해드리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순이는 사람 사러 온 사람을 찾아가서 자기가 몸을 팔겠다고 말하고 사정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들도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동정을 하고 그러면 그 대신 돈을 많이 주겠다고 하면서 데리러 오는 날짜를 약속하고 돈을 가득 넣은 큰 궤 하나를 내주었다.?

순이는 그 돈을 받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날부터 나날이 맛있는 음식을 사서 아버지께 드리며 위로하였다. 그리하여 순이는 약속한 날 아침 일찍이 자기가 일하던 장자 집 어른에게 가서 그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또 자기 아버지의 뒷일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자기 아버지 몰래 유서를 한 통 써서 돈과 함께 아버지께 드렸다. 그리고 한 벌 남은 새 옷을 갈아입고 부엌 뒤 수채구멍에서 나와있는 두꺼비에게 밥 찌끼를 주며 사람에게 말하듯이 “두껍아, 이젠 너와도 마지막이다. 이제 내가 가면 너에게 밥 줄 사람도 없을 테니 너는 너 갈 데로 가거라 하고´눈물을 흘리었다.

어느덧 약속한 시각이 되어서 사람 사러 온 두 장정이 찾아왔으므로 순이는 그 사람들을 바깥에서 잠깐 기다리라 하고 자기 아버지에게는 마지막 인사로 아랫마을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속이고 눈물을 머금으면서 그 장정들과 같이 집을 떠났다.

 

그날 저녁때에야 순이는 두 장정이 멘 가마에서 제전의 마당에 내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제관들은 순이를 흰 베로 손과 발을 묶어 컴컴한 당집 안 넓은 마룻바닥 위에 얹어 놓고 제를 다 지낸 뒤에는 그 당집의 문을 걸고서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밤이 깊었을 때 순이는 이제는 죽는가 보다 하고 눈을 감고 있으니, 무엇이 발목으로 기어 올라오는 것이 있으므로 깜짝 놀라 자세히 보니까 그것은 자기가 수년 동안 기르던 두꺼비였다. 순이는 매우 반가웠으나 묶인 모이요 죽는 몸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었을뿐더러 어떻게 하여 이 두꺼비가 나 있는 곳까지 왔을까 하고 생각하였을 때 첫 닭이 울었다. 그러자 제전의 불이 꺼지며 찬 바람이 일어나는 것 같더니 천정처마에서 무슨 불덩어리 같은 빛이 자기 앞으로 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자기 발목에서는 푸른빛 불 줄기가 그리로 또 올라가고 있었다. 이러하더니 당집 안에서는 붉은 불덩어리 빛과 푸른 불 줄기가 서로 밀면서 맹렬히 여러 시간을 싸우고 있더니 당집 안 처마에서 붉은 불덩어리 빛이 쫓기어 꺼지려 하자 안 처마에서 큰 소리가 나면서 천장에서 무겁고 크나큰 것이 마룻바닥 위에 떨어졌다.

날이 밝자, 당집 밖에서 어젯밤 제 지내던 제관들이 모여서 관을 메고 시체를 가지러 왔다. 제관들이 문을 열고 보니 죽었으리라고 생각했던 처녀는 살아 있고, 당집 안 마루바닥 위에는 크나큰 지네가 죽어 자빠져 있는데, 또 당집 한구석에는 두꺼비 한 마리가 입에서 푸른 독기를 뿜고 있었다.

이것을 본 제관들은 이 두꺼비가 독기를 뿜어 그 지네를 죽인 것을 알았다. 이리하여 제관들은 달려들어 묶여있는 순이를 끌어내려서 자기 집으로 보내주었다. 그런 뒤로 그 마을에는 지네의 피해라고는 없었다고 하며, 두꺼비는 효녀 순이에게 은혜를 갚기 위하여 그 뒤를 따라와서 독기를 뿜어 지네를 죽였던 것이라고 하는데 이로 인하여 뒷날 사람들이 그곳을 지네장터라 불러 온다고 한다.